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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도구

나는 나의 신앙의 첫사랑의 계절 20대 초반에, 해묵은 어느 초라한 번역서를 통해서 프란시스를 처음 만날 수 있었다. 그때부터 그는 나의 영혼 깊은 내면에서 나의 연인이 되어 버렸다. 그는 때로는 나의 위로자이기도 했고, 때로는 나의 안이한 삶을 책망하고 고발하는 나의 비판자이기도 했다. 그 후 20년이 훨씬 지나서 나는 다시 그의 전기를 영어로 읽었다(『St. Francis of Assisi』, Omer Englebert, Servant Books, 1965). 웬일인가! 옛날의 번역서에서 읽은 내용과 줄거리는 비슷하였으나, 그의 그림자는 더욱 견고하였고 투명하였다. 아더 대왕(King Arthur)의 궁중 뜨락에서 훈련받는 원탁의 기사가 꿈이었던 프란시스, 1182년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움브리안 골..
나는 나의 신앙의 첫사랑의 계절 20대 초반에, 해묵은 어느 초라한 번역서를 통해서 프란시스를 처음 만날 수 있었다. 그때부터 그는 나의 영혼 깊은 내면에서 나의 연인이 되어 버렸다. 그는 때로는 나의 위로자이기도 했고, 때로는 나의 안이한 삶을 책망하고 고발하는 나의 비판자이기도 했다.
그 후 20년이 훨씬 지나서 나는 다시 그의 전기를 영어로 읽었다(『St. Francis of Assisi』, Omer Englebert, Servant Books, 1965). 웬일인가! 옛날의 번역서에서 읽은 내용과 줄거리는 비슷하였으나, 그의 그림자는 더욱 견고하였고 투명하였다.
아더 대왕(King Arthur)의 궁중 뜨락에서 훈련받는 원탁의 기사가 꿈이었던 프란시스, 1182년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움브리안 골짜기(Umbrian Valley)에서 시작된 그의 인생 순례의 여정이 1226년 수바시오(Su-basio)의 산록에서 멈추기까지, 그는 여전히 꿈 많은 기사였다. 다만 그는 칼의 기사에서 복음의 기사로 그리고 사랑의 기사로 변신했을 따름이었다.
프란시스의 전기 작가 잉글벨트의 증언처럼 "그는 인류가 영원히 자랑스러워할 몇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인류에 의하여 가장 보편적으로 존경을 받지만, 그가 받는 존경만큼 사람들의 이해를 받지는 못했다.
그것은 그의 얼굴의 다양성 때문이리라. 그는 복음 전도자였다. 그는 청빈의 수도사였다. 그는 휴머니스트였고 자연 예찬론자였다. 그는 사회사업가였다. 그는 시인이었다. 기도자였다. 그리고 그는 설교자였다.
"주인을 따르겠는가? 종을 따르겠는가"라는 물음 앞에 그가 "물론 주인입니다"라고 대답한 그날 이후, 그의 삶은 이런 헤아리기 어려운 보석의 빛깔들을 지니기 시작한 것이다.
육신의 아버지를 떠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찾아 떠난 영혼의 오딧세이-그의 생(生)의 자국마다 그는 그 아버지를 향하여 "나의 하나님, 나의 전부이시여"(My God and my all)라고 울먹이며 걸어갔다.
프란시스가 세상을 떠나기 두 해 전에(1224년 9월), 라베르나(La Verna)의 산록에서 경험한 주님의 고난의 상혼(傷痕)-사랑의 스티그마타(Stigmata)는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을 깨울 영혼의 열망이 될 것이다.
프란시스가 마지막 숨을 거두며 남긴 말은, 오랫동안 우리를 향한 그의 지울 수 없는 기도로 살아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해야 할 바를 마치었소. 이제 그리스도께서 당신들이 해야 할 바를 당신들에게 친히 가르치시기를!"
그는 물론 신앙의 전통에 있어 카톨릭에 속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는 사제(Priest)의 자리가 아닌 평신도 수사의 자리(an ordained deacon)에서 삶을 살아간 한 시대의 그리스도의 제자였다. 그가 가톨릭인이기 때문에 개신교 전통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외면당해야만 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큰 영적 손실이라고 생각 한다. 그는 가톨릭의 제도권 내에서 당당하게 믿음의 삶을 살아간 가장 급진적이고 복음적인 그리스도인이었다고 나는 믿고 있다. 물론 이 말이 그의 신학 모두를 내가 수용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운 어떤 신앙 고백의 내용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 그의 기도, 그의 신앙은 여전히 내게 너무나 많은 것을 가르치고 있음을 어이하겠는가.
이 책은 프란시스에 대한 강론은 아니다. 다만 프란시스가 내게 남긴 감동을 가지고, 그의 기도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평화의 기도"로써 평화를 잃은 이 시대를 향한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을 뿐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기도의 결정(結晶)이다.
부디 프란시스의 주님이 평화를 잃고 지쳐 있는 나의 친구들에게 삶의 비전이 되어 주시기를 기도한다. 나의 사랑 프란시스여! 그의 주님, 나의 사랑이시어!
이동원 목사님은 2010년 말, 조기 담임 은퇴 이후,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를 향한 비전을 품고 지구촌교회 원로목사로서 새로운 도약의 길을 걷고 있다. 지구촌 목회리더십센터의 대표 등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복음 사역의 선두 주자로 활약하고 있다. 미국 사우스이스턴 침례신학대학원에서 신학 석사학위를, 트리니티 복음주의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 박사학위 취득 및 자랑스런 동문상을 수상하였고 리버티 침례신학대학원에서 명예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미드웨스턴 침례신학대학원에서 ‘스펄전 동역자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너희는 일어나 다시 서라>, <너희는 감동하라>, <너희는 기다리라>, <쉽게 풀어 쓴 누가의 예수 이야기>, <쉽게 풀어 쓴 마태의 천국 이야기>, <영성의 길>, <내 기도를 바꾼 기도> 등 다수의 저작 및 강해 설교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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